국제학과 지망생을 위한
한국사 융합 탐구 보고서 주제
"역사는 그냥 외우는 거 아닌가요?"
"옛날이야기가 지금 우리랑 무슨 상관이죠?"
아직도 이런 생각에 갇혀 있다면, 넌 그냥 수험생이야.

안녕.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읽고 미래를 여는 지혜를 탐구하는 친구들, 이치쌤이야.
역사 공부의 끝은 '암기'가 아니라 '해석'이야. 과거의 사건 속에서 시대를 관통하는 패턴과 원리를 발견하고, 그걸 현대 사회를 분석하는 '렌즈'로 사용하는 거지.
특히 국제 관계와 외교의 본질은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아.
오늘은 네 학생부에서 '나는 역사를 현재의 문제와 연결할 줄 아는 통찰력 있는 인재'라는 걸 보여줄 수 있는 한국사 연계 탐구 주제들을 모아왔어.
단순 사실 나열을 넘어, 너만의 분석과 평가를 담아낼 수 있는 진짜 '탐구' 주제들이니 제대로 한번 파고들어 봐.
고대 국가의 성장과 국제 관계
주제: 고구려의 '천하관'과 현대 국가의 '자주 외교' 노선 비교 연구
연계 내용: 국가의 성장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따르지 않고, 고구려 스스로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천하관'은 그냥 '자신감'의 표현이 아니야. 이건 고도의 외교 전략이었어.
독자적인 연호를 쓴다는 건 "우리는 중국의 시간표가 아닌, 우리만의 시간표대로 움직인다"는 주권 선언이지.
마치 학교 1등이 서울대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아예 자기가 직접 새로운 리그를 만들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아.
이걸 현대 국제정치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 줄 서지 않고 국익을 위해 독자 노선을 걷는 '자주 외교'와 비교 분석해봐.
천오백 년 전 고구려의 외교 전략이 21세기 대한민국의 외교 정책에 어떤 영감을 주는지 탐구하며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력을 보여줘.
주제: 삼국시대의 대외 항쟁(살수대첩, 안시성 전투)을 통해 본 '세력 균형(Balance of Power)' 이론의 역사적 적용
연계 내용: 국제 관계와 대외 교류
동아시아라는 교실에 수나라, 당나라라는 엄청난 '짱'이 등장했어. 고구려, 백제, 신라는 그야말로 바람 앞의 등불이었지.
이때 고구려의 전략은 절대 혼자 맞서 싸우는 게 아니었어. 백제나 신라가 당나라 편에 붙지 못하게 계속 관계를 조율하고, 때로는 연합해서 거대 제국의 힘을 분산시키는 전략을 썼지.
이게 바로 국제정치학의 핵심 이론인 '세력 균형'이야. 너무 강한 세력이 나타나면, 다른 약한 세력들이 연합해서 그 힘을 견제한다는 원리지.
살수대첩이나 안시성 전투가 단순한 전투의 승리가 아니라, 이런 복잡한 국제 역학 관계 속에서 고구려가 어떻게 '세력 균형자' 역할을 수행했는지 그 과정을 분석해봐. 역사적 사건을 현대 이론의 틀로 분석하는 능력을 보여줄 수 있어.
주제: 신라의 삼국통일 과정에 나타난 외교 전략과 동맹의 역할
연계 내용: 국제 관계와 대외 교류
나당동맹은 '신의 한 수'였지만, 동시에 '위험한 도박'이었어.
당시 최약체였던 신라가 고구려, 백제를 상대하기 위해 당나라라는 강대국을 끌어들인 건 최고의 외교 전략이었지. 마치 반에서 3등이 1, 2등을 이기기 위해 전학생 '짱'을 끌어들인 것과 같아.
하지만 목표를 달성한 후, 그 '짱'이 교실 전체를 차지하려고 할 때 신라는 어떻게 했을까? 바로 그 동맹과 싸워 이겨야 했어.
이 보고서에서는 나당동맹의 결성부터 나당전쟁까지의 과정을 추적하며, '동맹'의 본질을 탐구해봐. 동맹은 영원한 친구가 아니라 공동의 목표를 위한 '전략적 도구'이며, 목표 달성 후에는 또 다른 외교적 과제가 생긴다는 현실을 신라의 사례를 통해 분석하는 거야.
고려의 통치 체제와 국제 질서
주제: 고려시대 대외 관계(조공-책봉)의 실리와 명분 분석
연계 내용: 고려의 통치 체제와 정치 변동
조공-책봉 관계를 단순히 '고려가 중국에 머리를 숙였다'고만 생각하면 역사를 반만 보는 거야.
이건 고도의 '기브 앤 테이크' 전략이었어. 고려는 형식적으로 중국을 형님으로 모시는 명분을 주는 대신, 그보다 훨씬 더 큰 실리를 챙겼지.
정기적으로 사신을 보내며 얻는 선진 문물과 정보, 안정적인 무역로 확보, 그리고 무엇보다 국가의 안보를 보장받았어.
마치 거대 기업의 프랜차이즈 가맹점처럼, 본사에 로열티(조공)를 내는 대신 브랜드 파워와 안정적인 물류 시스템(안보, 무역)을 얻는 것과 같아.
고려가 송, 요, 금 등 여러 강대국 사이에서 이 관계를 어떻게 유연하게 활용하며 국익을 극대화했는지 분석해봐.
주제: 벽란도를 통해 본 고려시대의 해상 무역과 글로벌리즘의 초기 형태
연계 내용: 국제 관계와 대외 교류
'글로벌 시대'가 21세기에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야. 고려의 벽란도는 천 년 전의 '글로벌 허브'였어.
지금의 인천국제공항처럼, 벽란도에는 송나라 상인은 물론이고 머나먼 아라비아 상인들까지 드나들었지.
고려의 특산품인 인삼과 나전칠기가 실크로드를 통해 서역에 팔려나갔고, 우리는 그 대가로 향신료와 산호, 유리를 수입했어.
이건 단순한 물건 교환이 아니었어. 서로 다른 문화와 기술, 사람이 만나고 섞이는 '글로벌리즘'의 초기 형태였지.
고려가 어떻게 이렇게 개방적인 대외 정책을 펼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이런 활발한 해상 무역이 고려 사회와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탐구하며, 고려의 국제적 위상을 재조명해봐.
주제: 고려-몽골 전쟁 이후의 관계 변화를 통해 본 '종속이론'의 적용 가능성 탐구
연계 내용: 고려의 통치 체제와 정치 변동
원 간섭기 고려의 모습은 국제정치경제학의 '종속이론'을 설명하기에 완벽한 역사적 사례야.
종속이론은 강대국(중심부)이 약소국(주변부)을 경제적으로 착취하고, 정치적으로 예속시켜 영원히 발전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이론이야.
원나라는 고려에 정동행성을 설치해 내정을 간섭하고, 막대한 양의 금, 은, 인삼, 그리고 공녀까지 요구했어.
고려의 경제 구조는 원나라에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는 형태로 왜곡되었고, 정치적 자율성도 크게 훼손되었지.
이 보고서에서는 원 간섭기 고려의 상황을 종속이론의 틀로 분석하고, 이런 역사적 관계가 오늘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불평등한 경제 관계를 이해하는 데 어떤 시사점을 주는지 탐구해봐.
조선의 성립과 국제 관계
주제: 조선의 '사대교린' 외교 정책에 대한 재평가: 안정과 실리의 외교술
연계 내용: 조선의 성립과 발전
'사대'는 굴종, '교린'은 시혜. 이렇게 단순하게 외웠다면 이제 그 편견을 버려야 해.
조선의 '사대교린'은 당시 동아시아 최강국인 명나라와, 언제든 위협이 될 수 있는 일본, 여진족 사이에서 생존하기 위한 지극히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외교 전략이었어.
명에 대한 '사대'는 큰 전쟁을 막고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 안정장치였고, 일본과 여진에 대한 '교린'은 당근(무역 허용)과 채찍(군사적 대응)을 번갈아 사용하는 유연한 관리 정책이었지.
이는 마치 강대국과는 안보 동맹을 맺고, 주변국과는 상황에 따라 협력과 견제를 병행하는 오늘날의 외교와도 같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사대교린 정책의 복합적인 모습을 재평가해봐.
주제: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의 파병과 전후 조명 관계 변화를 통해 본 동맹의 딜레마
연계 내용: 국제 관계와 대외 교류
임진왜란 때 명나라의 도움이 없었다면 조선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아마 끔찍했을 거야.
하지만 그 도움은 결코 공짜가 아니었어. 조선은 수십만 명나라 군대의 주둔 비용을 감당해야 했고, 이는 국가 재정에 엄청난 부담을 줬어.
전쟁이 끝난 후, 명나라는 '도와줬다'는 명분으로 조선의 내정에 사사건건 간섭하려 들었지. 고마운 은인이 어느새 잔소리 심한 상전이 되어버린 거야.
이게 바로 '동맹의 딜레마'야. 동맹국의 도움이 절실하지만, 그 도움에 너무 의존하면 우리의 자율성을 잃게 될 수 있다는 거지. 임진왜란을 통해 조선이 겪었던 이 딜레마를 분석하며 동맹 관계의 빛과 그림자를 탐구해봐.
주제: 조선 후기 '북학론'에 나타난 통상국가론과 현대적 의의
연계 내용: 조선 후기의 새로운 흐름
조선 후기, 성리학이라는 'OS'에 갇혀있던 조선에 박제가 같은 북학파들은 '혁신적인 앱'을 설치하자고 주장했어.
그들은 청나라에 다녀온 후 큰 충격을 받았지. 조선이 여전히 농업에만 매달려 있을 때, 청은 활발한 상공업과 무역으로 엄청난 부를 쌓고 있었거든.
박제가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지 말고, 적극적으로 무역해서 돈을 벌어야 나라가 강해진다"고 외쳤어. 이게 바로 '통상국가론'이야.
비록 당시에는 급진적인 주장으로 치부됐지만, 이들의 생각은 오늘날 수출로 먹고사는 '개방형 통상국가' 대한민국의 뿌리가 되었어.
200년 전 북학파의 선구적인 아이디어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분석하며 역사와 현재를 연결하는 시각을 보여줘.
주제: 개항기 조약의 불평등성과 근대 국제법의 이중성
연계 내용: 근대 국가 수립의 노력
개항기 서구 열강이 조선에 들고 온 '만국공법(국제법)'은 모두에게 공평한 '룰'처럼 보였어.
하지만 그 룰북에는 약소국에게만 불리한 조항들이 숨겨져 있었지.
강화도조약의 '치외법권'은 일본인이 조선에서 범죄를 저질러도 조선 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뜻이야. 이건 법적 주권을 포기하라는 소리지.
조미수호통상조약의 '최혜국 대우'는 미국에게 가장 좋은 대우를 해주겠다고 약속하는 건데, 나중에 다른 나라와 더 좋은 조건으로 조약을 맺으면 그 혜택이 자동으로 미국에게도 적용돼.
이처럼 근대 국제법이 어떻게 제국주의 침략의 도구로 사용되었는지, 그 이중성과 위선을 조약의 구체적인 조항을 통해 비판적으로 분석해봐.
일제강점기와 국제 사회
주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 활동과 국제 연맹에 대한 기대와 한계
연계 내용: 독립 국가 건설 노력
임시정부는 총과 칼 대신 '외교'라는 펜으로 독립을 쟁취하려 했어.
나라 없는 설움 속에서도 파리 강화회의에 대표단을 보내고, 미국에 구미위원부를 설치하며 "한국은 독립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세계를 향해 외쳤지.
특히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원칙을 내세운 국제 연맹에 큰 기대를 걸었어.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지.
국제 연맹은 결국 승전국인 강대국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구였고, 패전국의 식민지가 아닌 이상 약소 민족의 독립 문제에는 눈을 감았어.
임시정부의 처절했던 외교적 노력이 왜 좌절될 수밖에 없었는지, 당시 국제 질서의 현실과 한계를 함께 분석하며 독립운동의 또 다른 측면을 조명해봐.
주제: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에 대한 국제 사회의 대응과 집단안보체제의 실패
연계 내용: 민족 운동의 전개와 분화
국제 연맹이라는 '세계 경찰'이 있었는데, 일본이라는 '깡패'가 만주를 침략하고 중국을 공격하는데도 왜 속수무책이었을까?
미국, 영국 같은 강대국들은 일본을 비난하면서도 실질적인 제재에는 나서지 않았어. 경제 불황 속에서 전쟁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고, 일본이 소련을 견제해주길 바라는 속내도 있었거든.
"다 함께 힘을 합쳐 침략자를 막자"는 '집단안보'의 이상은 강대국들의 이기심 앞에서 무너져 내렸어.
결국 국제 사회의 소극적인 대응은 일본의 야욕을 더욱 키워줬고,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더 큰 비극으로 이어졌지. 이 역사적 실패 사례를 통해 오늘날 UN의 역할과 한계를 비판적으로 고찰해볼 수 있어.
주제: 카이로 선언과 얄타 회담 등 연합국 회의가 전후 한반도 문제에 미친 영향 분석
연계 내용: 독립 국가 건설 노력
우리 운명이 우리도 없는 자리에서 결정됐어. 이게 바로 강대국 정치의 현실이야.
카이로 선언에서 연합국은 처음으로 "한국을 독립시킨다"고 약속했어. 임시정부의 외교적 노력이 맺은 소중한 결실이었지.
하지만 전쟁이 막바지로 가면서, 전후 세계 질서를 어떻게 나눌지에 대한 강대국들의 샅바 싸움이 시작됐어.
얄타 회담과 포츠담 회담에서는 "독립은 시켜주는데, 당분간 우리가 관리 좀 해야겠다"는 신탁통치안이 슬그머니 등장했지. 특히 소련의 참전을 유도하기 위한 미국의 계산이 깔려 있었어.
이 보고서에서는 연합국 회의의 결정 내용을 시간 순서대로 추적하며, 약소국의 운명이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냉정한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분석해봐.
대한민국의 발전과 국제 관계
주제: 6.25 전쟁에 대한 UN의 개입과 '집단안보'의 첫 시험대
연계 내용: 냉전 체제와 대한민국 정부 수립
6.25 전쟁 당시 UN의 참전 결정은 기적에 가까웠어.
원래대로라면 상임이사국인 소련이 거부권을 행사해서 막았어야 했거든. 그런데 당시 소련은 '중국 대표권 문제'로 UN 회의에 불참하고 있었지. 그 절묘한 타이밍 덕분에 UN은 역사상 최초로 '집단안보' 체제를 가동해 군대를 파견할 수 있었어.
이 탐구에서는 UN의 개입이 어떻게 대한민국을 지켜냈는지, 그리고 동시에 전쟁을 국제전으로 확대시켜 분단을 고착화하는 결과를 낳았는지 그 양면성을 분석해봐. 6.25 전쟁이 UN 역사에서 '집단안보의 성공적인 첫 사례'이자 '강대국 정치의 한계를 보여준 사례'로 동시에 평가받는 이유를 심층적으로 탐구하는 거야.
주제: 한일 국교 정상화(1965) 과정의 외교적 쟁점과 역사 문제의 현재적 과제
연계 내용: 산업화의 성과와 사회 환경 문제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는 '과거'와 '미래' 사이의 힘겨운 줄다리기였어.
당시 박정희 정부는 경제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해야 한다는 '미래(경제)'를, 국민들은 식민 지배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배상을 받아야 한다는 '과거(역사)'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지.
결국 정부는 일본으로부터 '독립 축하금' 성격의 청구권 자금을 받는 것으로 과거사 문제를 서둘러 봉합했어.
이 탐구에서는 당시 한일회담의 주요 쟁점들(청구권 자금의 성격, 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 등)이 어떻게 타결되었는지, 그리고 그 '불완전한 합의'가 왜 오늘날까지도 한일 관계의 발목을 잡는 갈등의 씨앗이 되었는지 그 과정을 추적해봐.
주제: 베트남 파병이 한국의 경제 성장과 한미 동맹에 미친 영향 분석
연계 내용: 산업화의 성과와 사회 환경 문제
베트남 파병은 한국이 처음으로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미국의 동맹으로서)'로 역할을 바꾼 역사적 사건이야.
물론 여기에는 복잡한 계산이 깔려 있었지. 한국은 미국의 요청에 응하는 대가로 막대한 경제적, 군사적 이익을 얻었어. '브라운 각서'를 통해 약속받은 차관과 원조는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 경제 성장의 종잣돈이 되었고, 한국군의 장비는 최신식으로 현대화되었지.
한미 동맹은 이 시기를 거치며 단순한 '안보 동맹'을 넘어 '경제 동맹'의 성격까지 갖게 되었어.
이 탐구에서는 베트남 파병이 한국의 경제와 안보에 어떤 빛과 그림자를 남겼는지, 그 대가로 우리가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무엇인지 균형 잡힌 시각으로 분석해봐.
주제: 1970년대 데탕트(Détente)와 남북 관계의 변화 - 7.4 남북 공동 성명을 중심으로
연계 내용: 민주화를 위한 노력
1970년대, 세상을 지배하던 미국과 소련 두 '형님'이 잠시 싸움을 멈추고 화해 무드를 조성했어. 이게 바로 '데탕트'야.
이 국제적인 분위기는 얼음장 같던 한반도에도 영향을 미쳤지. 남과 북은 분단 이후 처음으로 공식적인 대화를 시작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7.4 남북 공동 성명'이야.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이라는 통일 3대 원칙에 합의한 건 정말 역사적인 사건이었어.
하지만 이 대화는 각자 자신의 독재 체제를 강화하려는 정치적 목적도 숨어있었기 때문에 오래가지 못했지.
이 보고서에서는 데탕트라는 국제 정세의 변화가 어떻게 남북 대화의 문을 열었는지, 그리고 남북 정권의 국내 정치적 계산이 어떻게 그 대화의 한계를 만들었는지 그 과정을 심층적으로 분석해봐.
주제: 외환 위기(1997)와 IMF 구제금융이 한국 경제 구조에 미친 영향
연계 내용: 외환 위기의 극복과 사회·문화 변동
1997년 외환 위기는 대한민국 경제에 '대수술'을 감행한 사건이야.
수술 집도의는 IMF(국제통화기금)였지. IMF는 구제금융이라는 '수혈'을 해주는 대신, 한국 경제의 체질을 완전히 바꾸는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을 요구했어.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고(노동 유연화), 부실기업은 과감히 퇴출되었으며, 외국 자본이 마음대로 들어올 수 있도록 금융 시장이 활짝 열렸지.
이 '신자유주의'식 처방 덕분에 한국 경제는 빠르게 위기를 극복했지만, 그 과정에서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소득 격차가 커지는 등 사회 양극화라는 큰 후유증을 앓게 되었어. IMF 체제가 한국 사회에 남긴 빛과 그림자를 객관적인 데이터로 분석해봐.
주제: 한중 수교(1992)가 동북아 냉전 구도 해체에 미친 영향
연계 내용: 6월 민주항쟁 이후 민주화 과정
1992년 한중 수교는 '적과의 동침'에 가까운, 동북아 외교 지형을 뒤흔든 대사건이었어.
6.25 전쟁 때 서로 총부리를 겨눴던 두 나라가 이념의 벽을 허물고 손을 잡은 거야.
이 배경에는 냉전이 끝나가는 세계사적 흐름과, 실용주의 노선을 택한 중국, 그리고 북한의 외교적 고립을 노린 한국의 '북방 정책'이 있었지.
한중 수교는 북한에게는 가장 믿었던 우방을 잃는 충격이었고, 한국 경제에게는 13억 인구의 거대한 시장이 열리는 기회였어.
이 탐구에서는 한중 수교가 어떻게 동북아의 오랜 냉전 구도를 마지막으로 해체시켰는지, 그리고 그 이후 30년간 한국의 외교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 과정을 입체적으로 분석해봐.
역사 탐구자를 위한 현실 Q&A
이런 주제는 너무 어려워 보이는데, 고등학생 수준에서 가능한가요?
당연히 가능해. 대학교수 수준의 결론을 내라는 게 아니야.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국제정치'나 '외교'라는 새로운 렌즈로 '분석하려는 시도' 그 자체가 중요한 거야. 너의 지적 호기심과 잠재력을 보여주는 거지.
참고 자료나 논문은 어디서 찾아야 하나요?
RISS(학술연구정보서비스)나 국회도서관 홈페이지가 기본이야.
처음에는 'OOO의 재평가' 같은 키워드로 검색해서 다른 연구자들이 어떻게 분석했는지 살펴보는 것부터 시작해. 그걸 비판적으로 읽으면서 너의 생각을 정리하는 거야.
제 주관적인 생각이 너무 많이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오히려 좋아. 단, 그 주장이 '근거 없는 뇌피셜'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라는 탄탄한 근거 위에 서 있어야 해.
"나는 ~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라는 역사적 사실이 이를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로 너의 논리를 증명해.
역사적 사건을 현대 이론으로 분석하는 게 너무 억지스럽지 않을까요?
전혀. 그게 바로 '역사학'과 '정치학'이 만나는 지점이야. '세력 균형'이나 '종속이론' 같은 이론들은 시대를 초월해 인간 사회의 관계를 설명하는 보편적인 틀이야.
역사적 사례를 통해 이론의 현실 적용 가능성을 검증하는 것 자체가 매우 수준 높은 탐구 활동이야.
이런 보고서가 정치외교학과나 사학과 면접에서 어떤 도움이 되나요?
"한일 관계의 현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저는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과정을 탐구하며..." 라고 시작하면, 너의 답변에 역사적 깊이와 논리적 근거가 더해져.
단순한 암기 지식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 현재를 분석하는 능력을 갖췄다는 걸 증명하는 거지.
마무리: 시대를 읽는 역사가를 꿈꾸는 너에게
역사는 죽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거울이자 미래의 나침반이야.
오늘 살펴본 주제들은 그 거울을 닦고 나침반을 읽는 훈련 과정이라고 생각해.
하나의 주제를 깊이 파고드는 경험은 최고의 논술 학원이나 과외보다 더 뛰어난 논리력 훈련이 될 거야.
이런 탐구 경험이 쌓이면, 나중에 면접 학원 없이도 너의 생각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돼.
혹시 자료 찾기가 막막하다면, 학교 도서관 말고도 좋은 온라인 강의나 인강을 참고하는 것도 방법이야.
나중에 대학 가서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를 가서 외국 친구들에게 우리 역사를 제대로 설명하려면, 이런 깊이 있는 공부가 필수겠지? 토익, 토플 점수만큼 중요한 게 바로 우리 역사에 대한 이해니까.
이치쌤은 너의 지적인 도전을 항상 응원할게.
'학과별 심화탐구 주제 > 사회과학 계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외교관이 꿈이에요" 국제학과 '세계사' 세특 심화 탐구 주제 14가지 (0) | 2025.09.22 |
|---|---|
| GIS, 공정무역, NGO... 국제학과 '세계시민과 지리' 세특 탐구 주제 12가지 (0) | 2025.09.22 |
| 뉴스만 보는 친구와 격차 벌리는 법, 국제학과 '통합사회2' 세특 심화 탐구 보고서 주제 20가지 (0) | 2025.09.22 |
| 로힝야 사태부터 젠트리피케이션까지, 국제학과 '통합사회1' 세특 심화 탐구 주제 15가지 (0) | 2025.09.22 |
| UN 회의록부터 『총, 균, 쇠』까지, 국제학과 '공통국어' 세특 탐구 주제 20가지 (0) | 2025.09.22 |